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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글

26년 5월 18일 생각 글(AI관련 유튜브를 보고 정리한 글)

 

왓챠 오리지널 《사막의 왕》과 유튜브 '지식인초대석 EP.133 (김대식 × 김혜연)'을 보고 든 생각


"왜 나는 매일 동그라미만 그리는 거지?"

2026년 현재, 한국 청년 고용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15~29세 청년 일자리 21만 개가 사라졌다. 그중 98.6%가 AI 고노출 직종이다. 신입 채용 공고는 줄었고, 경력직 요구는 높아졌다. 대기업은 시니어 한 명과 AI 조합으로 신입 세 명을 대체한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문이 닫혀있는 느낌.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다.
※ Acemoglu & Restrepo, "Tasks, Automation, and the Rise in US Wage Inequality", NBER Working Paper, 2022 —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entry-level 노동 수요가 집중적으로 감소한다는 실증 분석.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사막의 왕》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대기업에 입사한 주인공 이서. 첫날부터 하는 일이 종이에 동그라미 그리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알고 보니 그 부서는 회장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일. 그런데 직원들은 못 나간다. 연봉이 너무 높으니까.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근데 이 장면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서가 그린 동그라미가 사실 AI 학습 데이터였다면 어떨까. 손 움직임 패턴, 집중도 변화, 반복 작업에서의 감정 반응. 무의미해 보이는 미션이 사실은 AI를 훈련시키는 원료였다면.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는 이서가 몰랐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알면서 들어가는 구조가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무겁다. 맞다. 무거운 게 맞다. 근데 끝까지 읽어줬으면 한다.

이걸 쓰는 이유는 겁주려는 게 아니다. 구조를 알면 덜 무섭기 때문이다.

인류는 매번 틀렸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같은 말을 했다.

"이제 다 망했다."

주 7일 노동이 당연했던 시대, 주 5일제 도입 논의가 나왔을 때 기업들은 생산성이 무너진다고 했다. 공장 자동화가 시작됐을 때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모두 사라진다고 두려워했다. 전화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한때 고급 기술직이었다. 전화 보급이 확산되면서 콜센터·텔레마케팅으로 단순화됐고, 자동화되면서 결국 소멸했다.

 

3D 프린터는 처음에 수천만 원짜리 산업용 장비였다. 소수의 제조업체만 독점했다. 지금은 30만 원에 개인이 집에서 쓴다. 전동 키보드, 드론, 태양광 패널도 전부 같은 흐름이었다. 소수가 독점하던 기술이 풀리는 순간, 세상은 항상 넓어졌다.

인류는 매번 새로운 기술 앞에서 망한다고 했고, 매번 틀렸다.

단, 틀렸다는 게 아프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교환원이 콜센터로 밀려나는 동안 그 사람들은 실제로 힘들었다. 자동화가 공장을 삼키는 동안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받았다. 전환기는 항상 존재했고, 그 전환기 안에 있는 사람한테는 역사적 패턴이 위로가 안 된다.

AI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전환기다. 그래서 구조를 알아야 한다. 두려움보다 구조를 먼저.
※ Daron Acemoglu, "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 MIT Working Paper, 2024 — AI의 생산성 효과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나 단기 전환 비용과 분배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분석. AI 낙관론을 정면 반박한 논문으로 주목받았다.


근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AI가 이전 기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기술이 풀려도 진입장벽은 항상 남아있었다. 3D 프린터가 싸져도 CAD 설계는 따로 배워야 했다. 인터넷이 열려도 코딩은 공부해야 했다. 카메라가 보급돼도 사진을 잘 찍으려면 기술이 필요했다.

AI는 그 진입장벽 자체를 없애버렸다.

 

전문 지식 없이도, 코딩 몰라도, 아이디어와 생각만 있으면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에 접근할 수 있는 첫 번째 기술이다. 과거엔 소수가 문제를 풀었다. 앞으로는 다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지 못한 참신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구상하는 생각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 WEF Future of Jobs Report 2025 — 2030년까지 9,200만 개 직무가 대체되지만 1억 7,000만 개의 신규 직무가 생성될 것으로 전망. 단, 새 직무는 다른 역량을 요구하며 지역·연령·교육 수준에 따른 격차가 크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AI 시대 생존 전략이 1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고 있다고 했다.

연도 살아남는 사람 설명
2023년 질문을 잘 하는 사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에게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질문법
2024년 AI 도구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 챗GPT, 클로드 등 다양한 AI 도구 활용
2025년 말로 코딩을 시키는 사람 바이브 코딩: 코드를 직접 짜지 않고 AI에게 지시해서 만드는 방식
2026년 AI 비서를 여러 개 굴리는 사람 에이전틱 AI: 사람 대신 반복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AI

빠르다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근데 빠른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올라타지 못하는 게 무서운 거다.


그런데 기업은 왜 인간을 계속 쓸까

여기서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AI가 이렇게 빠르고 효율적이라면, 기업은 왜 인간을 계속 고용할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① 합법적 데이터 수집

AI가 사람처럼 되려면 사람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감정, 반응, 판단 패턴 — 이게 지금 가장 비싼 원료다. 예전에는 앱 약관 뒤에 숨겨서 몰래 긁어모았다. 월드코인 (샘 알트만이 만든 암호화폐 프로젝트)은 개발도상국에서 홍채 데이터를 소액 코인으로 교환했다. 법이 강해질수록 이런 회색지대가 막힌다. 그러면 기업은 내부로 선회한다. 고용 계약서에 데이터 수집 동의를 명시적으로 넣으면 합법이다. 직원이 곧 합법적 데이터 원료가 되는 구조다.
※ 국내 데이터 라벨링 시장은 연평균 21.9% 성장 중이며 2025년 약 4조 3천억 원 규모로 전망된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② 감성 보완

AI가 못 하는 영역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 김혜연 안무가는 이걸 '감흥력'이라고 불렀다. 정답도 없고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일은 오히려 AI 시대에 가치가 올라간다. 가트너 리서치 (세계적인 IT 리서치 기관)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AI 도입 실패 원인 1위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의 심리적 거부감이었다.

③ 책임 흡수 — 가장 냉정한 이유

군대에서 차량이 이동할 때 반드시 선탑 (차량 책임자: 사고 발생 시 법적·군사적 책임을 지는 탑승 지휘자)을 둔다. 차가 사고를 내도 차는 책임을 못 진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줬을 때, AI를 고소할 수는 없다. 법인도 아니고 인격도 없으니까. 기업 입장에선 이게 유리하다. "우리 AI가 실수한 게 아니라, 담당 직원이 최종 확인을 소홀히 한 겁니다." 자율주행차가 완전 자율 기술을 갖춰도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운전자 책임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 EU AI Act (2024) — 고위험 AI 시스템에 인간 감독(Human Oversight) 의무를 명시. AI 판단에 최종 서명하는 인간 담당자를 반드시 두도록 규정. 책임 공백을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핀이 법제화된 첫 사례.


스트레스는 어디로 가냐

  일본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다. 작은 접촉사고였는데, 경찰이 와서 분필로 바닥에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보드판에 연필로 기록했다. 한국이었다면 일본처럼 경찰이랑 보험사가 와서 사진 찍고 빠르게 종결됐을 일이다.

일본 경찰은 느렸지만 스트레스가 없어 보였다. 매뉴얼대로 하면 책임이 없으니까.

  일본식 한국식
처리 속도 느림 빠름
담당자 스트레스 적음 높음
시민 편의 불편 편함
AI 시대 적합성 매뉴얼을 AI가 대체 적응력이 강점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한국식 구조가 사실 AI 시대 업무 방식에 가장 가깝다. 단, 그 스트레스를 흡수하던 사람이 AI로 대체되면 책임질 안전핀도 같이 사라진다. AI가 결정하고 사람이 서명만 하는 구조에서, 문제가 터지면 서명한 사람 책임이다. 이걸 알고 들어가는 사람과 모르고 들어가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두려움이 직종을 만든다

근데 역사를 보면 희망적인 패턴이 있다.

기술이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면, 그 리스크를 관리하는 직종이 반드시 생겼다.

기술 리스크 신설 직종
산업화 공장 사고 급증 산업안전관리사
고층빌딩 화재 위험 증가 소방안전 직종
자동차 보급 교통사고 급증 교통안전 직종
인터넷 보급 개인정보 유출 정보보안 전문가
AI 판단 오류·책임 공백 AI 책임 직종 (예정)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기술이 일자리 총량을 줄인 적은 없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 WEF Future of Jobs Report 2025 — "직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역할이 재편된다(role transformation)"는 표현을 공식 사용. 새로운 직종의 등장은 리스크 관리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


앞으로 생길 직종 — 미션 설계자

이 구조가 완성되면 완전히 새로운 직종이 하나 탄생한다.

"어떤 미션으로 어떤 데이터를 뽑을 것인가"를 기획하는 사람.

이서한테 동그라미를 그리게 한 사람이 누군가는 있었을 거다. 앞으로는 그게 정식 직종이 된다.

기존 직종 미션 설계자로서의 역할
심리 상담사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나오는지 아는 사람
게임 기획자 사람이 자연스럽게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사람
초등학교 선생님 지루하지 않게, 모르는 사이에 뭔가를 하게 만드는 사람
현장 경험자 실제 상황에서 어떤 변수가 생기는지 몸으로 아는 사람

이 직종에서 코딩 실력은 핵심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 현장을 아는 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감한 경험이 더 중요하다.

지금은 채용공고도 없다. 10년 뒤에는 UX 디자이너나 데이터 분석가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직종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 선점할 수 있는 타이밍이다.


직원은 일꾼이 아니라 자산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이 구조에서 고용의 의미 자체가 바뀐다.

AI가 일을 대신할수록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줄어든다. 역설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긴다. 일을 적게 하고, 사람은 많이 두는 방향으로.

근데 그 사람들의 역할이 바뀌는 거다. 일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자산인 구조로.

AI 시대 직원의 세 가지 정체성

고객 행동·감정 데이터를 제공하는 합법적 원료
안전핀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지는 법적 존재
자산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적 판단과 감성 보유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해진다. 각자의 역할 범위를 정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제어하고, 책임 구조를 유지하는 사람. 지금으로 치면 HR 매니저와 팀장이 합쳐진 역할인데, AI 시대에는 그 역할이 훨씬 정교해진다.

단순히 출퇴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라는 자산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내면서 동시에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이다. 보험 설계사가 고객 맞춤형 상품을 설계하듯, 직원 한 명 한 명의 역할과 책임을 AI 시스템 안에서 설계하는 사람.

결국 AI 시대의 고용은 단순히 일을 시키는 게 아니다.
사람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지느냐를 설계하는 일이다.

마치며 — 판도라 상자 안에 남은 것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온갖 재앙이 쏟아졌다. 질병, 전쟁, 고통, 죽음. 근데 맨 마지막에 하나가 남았다. 희망이었다.

AI도 똑같은 구조다.

일자리 공포, 책임 전가, 데이터 착취, 불평등 심화. 다 나왔다. 다 현실이다. 부정할 생각 없다. 근데 그 끝에 뭐가 남냐.

소수가 독점하던 기술이 풀리는 순간, 세상은 항상 넓어졌다. 주 7일제가 무너질 때도, 수작업이 자동화될 때도, 3D 프린터가 보급될 때도. 다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아무도 생각 못 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AI는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번엔 진입장벽 자체가 없어졌다. 구상하는 생각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열렸다.

두려워하기에 가능성이 너무 많다.


이 글은 유튜브 '지식인초대석 EP.133 (김대식 × 김혜연)'과 왓챠 오리지널 《사막의 왕》을 보고 나눈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참고 출처: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가트너 리서치, 개인정보보호위원회(2025), 주4일제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