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 상원 의사당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배경은 이렇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집권 시절 강력하게 밀어붙인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초법적 처형과 인권 유린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두테르테 본인은 이미 체포된 상태고, 이번 총격은 그 측근인 델라로사 상원 의원을 ICC 요청에 따라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 사태의 구도를 이해하려면 필리핀 권력 지형을 알아야 한다. 현 대통령 마르코스 2세는 과거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다. 그는 집권을 위해 두테르테의 딸 사라 두테르테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했다. 두 가문이 연합한 것이다. 그런데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르코스가 추진한 헌법 개정이 사라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해충돌이 생겼고, 두 가문은 적으로 돌아섰다. 여당 주도 하원은 사라 부통령 탄핵 소추안을 두 번 발의했고, 친두테르테 의원들은 결집해 부통령 탄핵 재판을 담당할 상원의장을 전격 교체했다. 그 새 의장은 두테르테의 과거 대선 러닝메이트였던 카예타노다.
한마디로 필리핀 정치는 지금 두 가문의 전쟁 중이다.
필리핀이 왜 이 모양인지를 이해하려면 역사부터 봐야 한다.
필리핀이 짊어진 식민 유산은 중층적이다. 스페인 약 300년, 미국 식민지 약 50년(1898~1946년), 그리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제국의 점령. 가장 깊은 뿌리는 스페인에 있다. 스페인은 엔코미엔다(encomienda) 제도를 통해 정복자와 그 후손에게 토지와 원주민 노동력을 통째로 넘겼다. 이 구조가 카시케(cacique) 지주 가문 체제로 굳어졌고, 독립 이후에도 토지와 권력을 쥔 가문은 교체되지 않았다.
스페인이 심어놓은 과두제 토양 위에서 남미는 마약 자금과 결합해 카르텔로 진화했고, 필리핀은 정치 가문 세습과 범죄 네트워크가 결합한 형태로 진화했다. 카르텔의 직접적 원인은 20세기 마약금지법과 냉전기 자금 루트 같은 근대 요인들이지만, 그 구조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토양은 스페인이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것이다. 겉모습은 달라도 같은 땅에서 자란 것들이다.
미국은 그 위에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했고, 일본은 바탄 죽음의 행진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폭력을 더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스페인이 300년에 걸쳐 심어놓은 가문 권력 구조를 뿌리째 뽑지는 못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필리핀한테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어디서부터 봉합하고, 무엇부터 처리해야 할지 — 결국 대가를 치른 당사자들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서 내가 판단할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예루살렘의 날(5월 14일)을 전후로 이스라엘에서 종교 혐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날은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슬람교도에게는 치욕의 날로 여겨진다.
논란의 중심은 성전산이다. 이곳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 종교의 공동 성지로,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현행 규칙상 유대인은 방문은 가능하지만 공개적인 기도는 금지다. 그런데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이번에도 사원 앞에서 춤을 추며 "성전산은 유대인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은 종교 경계를 넘어 확산됐다. 지난달에는 유대인 남성이 길을 걷던 프랑스인 수녀를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스라엘 군인들의 기독교 상징물 훼손 사건도 공개됐다. 2025년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기독교 관련 범죄는 180여 건에 달한다.
한편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체포된 활동가들이 손목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공분을 샀다. 결국 네타냐후가 이례적으로 벤그비르를 공개 질책하고, 활동가 전원을 추방 조치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민주주의 연대 재단의 2026년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전 세계 120개국 중 국가 호감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전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해체 시도에 이스라엘 국민들이 직접 들고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부의 견제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봤다. 그런데 가자 전쟁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위기가 오히려 극우 애국주의의 확산을 도운 격이 됐다.
벤그비르 같은 인물의 행동에 총리가 즉각 제동을 걸지 않는 걸 보면, 이건 정치인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정권이 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일종의 반공주의처럼 '반중동, 반서방' 정서를 내부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네타냐후 본인도 과거 중동전쟁에 특수부대원으로 참전한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해법은 과정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이고, 그 결과란 중동전쟁의 영광을 어떤 형태로든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바탕에는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있다. 나라 없이 수천 년을 떠돌던 설움,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인종청소의 공포, 그 두려움이 "우리가 당하기전에 먼저 선수를 치겠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해 못 할 심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공포가 지금은 구호 활동가를 무릎 꿇리고, 수녀를 폭행하고, 동맹국들의 비판마저 묵살하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방어 본능이 공격 본능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달부터 유럽연합(EU)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 잠정 발효됐다. 메르코수르는 남미 주요 4개국이 1991년에 결성한 경제 블록으로, 이번 FTA는 협상 시작 25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EU는 세계에서 농축산물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지역이다. 항생제 사용, 사육 환경, 농약·제초제까지 엄격히 규제하고 이 모든 게 생산 비용으로 이어진다. 반면 남미산 농축산물은 이런 기준을 적용받지 않고, 거기에 거의 무관세로 수입된다. 프랑스 농민 입장에서는 규칙이 다른 선수와 같은 링에서 싸우는 셈이다.
반대가 가장 거센 국가는 프랑스다. 독일처럼 공업 중심 국가는 남미 시장 개척을 반기지만, 농업이 핵심 산업인 프랑스는 협정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잠정 발효 즉시 중단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게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오랫동안 곯아온 게 트리거를 만나 터진 거라고 본다.
유럽 농민들이 환경 규제, 항생제 기준, 사육 환경까지 충족해가며 생산 단가를 올리는 동안, 정치인들과 EU 관료들은 탄소세와 유류 지원을 차등 축소하면서 숨구멍을 하나씩 막아왔다. 굴에 연기를 피워 넣고 입구를 틀어막은 격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EU는 각국마다 국민 성숙도와 사회적 합의 수준이 다른데, 그 차이를 조율하지 못한 채 정책이 쌓여왔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업보로 대규모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동화 여건도 귀국 여건도 마련하지 못한 채 차별을 방치했다. 합의 없는 친이민 정책과 자국민 보호를 동시에 외치다가 어느 쪽도 제대로 못 한 결과가 지금이다. 이 내부 균열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FTA가 추가로 불을 댕긴 것이다.
이란 국영방송에 여성 앵커가 총을 들고 등장해 UAE 국기를 겨누는 장면이 방영됐다. 테헤란 혁명 광장에는 "페르시아 전역은 이란의 사냥터"라는 문구와 함께 미군 전투기들이 그물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선전 전담 조직 OBA의 연간 예산은 약 812억 원으로, 인프라 건설 담당 부서보다 세 배 많다.
이란이 UAE를 겨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UAE는 2020년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었고, 이번 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참전 의사를 밝혔으며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까지 배치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배신자다.
미국 측 동향도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미국 공중 급유기 50대 이상이 집결한 게 위성 사진으로 확인됐다. 트럼프가 장남 결혼식 피로연을 취소하고 워싱턴에 머물겠다고 밝히면서 이란 공습 재개 가능성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란의 선전물들이 단순한 허세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란 내 온건파는 이미 미국의 개입과 내부 숙청으로 고립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란 개혁파가 협력을 타진했을 때 서방이 외면했고, 2015년 핵합의(JCPOA)를 트럼프가 일방 파기하면서 온건파의 입지는 완전히 무너졌다. 협상이 배신으로 끝나는 걸 두 번 경험한 국민들이 강경파를 지지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혁명수비대가 끌고 가는 지금의 구조는 태평양전쟁 말기 군부가 일본 정부를 압도하던 흐름과 닮아 있다.
결국 서방이 반복한 실수는 하나다. 외부에서 때리는 것만 생각했지, 내부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설계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총 든 앵커다.
개인적 가설이지만 — 팔라비 왕조 망명 세력을 임시대통령 형식으로 세우고, 이란 내부 저항 시민 세력과 접촉해 지하 조직을 구축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고려 황실이 몽고와 연합해 무신정권을 내부에서 축출했던 것처럼, 외부 압박보다 내부 붕괴가 효과적이다. 망명 이란 국민들의 형식적 투표로 팔라비 왕을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임명하고, 내각은 의도적으로 반이스라엘 성향 인사들로 채운다. 망명 생활을 버티며 국제정세의 잔인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팔라비 시대부터 이란 내부에 영향력을 유지해왔다는 것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경계하고 더 선명하게 거리를 둘 동기가 있다.
과거청산의 정당성도 여기서 나온다. 팔라비 시대 비밀경찰 SAVAK이 악명 높았던 건 사실이지만, 1979년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가 자국민에게 가한 피해는 규모가 다르다. 1988년 정치범 대학살에서는 수천 명이 재판 없이 처형됐고, 2019년 시위에서는 며칠 만에 수백 명이 사살됐다. 국제앰네스티가 기록한 피해자 수만 해도 SAVAK 시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혁명수비대 피해자 중심의 반민족특위를 구성해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 피해 당사자가 칼을 쥐는 구조라서 외세 주도 체제 교체와는 정당성이 다르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제로 전환하고, 팔라비 임시정부는 해산한다. 왕정 복귀가 아니라 왕조가 씨앗이 되어 민주 이란을 만드는 구조다.
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외세의 개입에 끌려가지 않는 친서방 국가의 탄생이다. 냉전 시절 핀란드가 실제로 그 포지션을 유지했다 — 소련 옆에 붙어 있으면서도 서방식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어느 진영의 군사적 하청도 거부한 이른바 핀란드화(Finlandization) 모델이다. 지금 튀르키예가 차지한 중동의 중재자 포지션을 이란이 가져갈 수 있었다. 그 타이밍은 이미 지났지만, 이 구도가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록해둘 만하다.
5월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신임 의장으로 케빈 워시가 취임했다. 취임식은 1987년 그린스펀 이후 39년 만에 백악관에서 열렸다. 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금리 하나가 전 세계 금융시장, 환율, 대출 비용에 영향을 미친다.
워시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모건 스탠리를 거쳐 35세에 최연소 연준 이사를 지낸 금융 엘리트다. 본인 자산만 2억 달러(약 3천억 원), 배우자 자산까지 합하면 약 4조 원 수준으로 알려진다. 과거 강경 매파였던 그는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인하를 주장하면서 "비둘기로 변절한 매"라는 별명이 붙었다. 취임식 연설에서 트럼프가 23분, 워시는 5분 정도 발언했다.
워시가 금리를 낮춰 미국 내 혼란을 수습할지, 아니면 과거 성향대로 버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백악관에서 취임식을 하고 트럼프 연설이 23분을 차지하는 걸 보면, 적어도 당분간은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구도다. 파월이 임기를 버티며 이사회 구도를 유지하는 것도 흥미로운 변수다. 그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5월 22일은 UN이 지정한 국제 생물 다양성의 날이었다.
콜롬비아 아마존강 — 불법 금광과 수은 오염
금값이 오르면서 아마존 유역 불법 금광이 급증했다. 금 분리 과정에서 쓰이는 수은이 정화 없이 강으로 유입되고,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면서 분홍 돌고래 체내에서 고농도 수은이 검출됐다. 현재 분홍 돌고래 개체 수는 52% 감소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메콩강 — 복합 원인의 이라와디 돌고래
광산 중금속 폐수 유입, 수력발전소 댐으로 인한 어류 이동 차단, 불법 그물 익사 —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 구간 소집단 개체 수가 한 자릿수까지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고(방송 인용 수치 기준), 보존 노력으로 현재 캄보디아 구간 기준 약 110여 마리 수준으로 회복됐다.
두 강의 돌고래 문제는 원인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개발 이익 앞에서 생태계는 항상 뒤로 밀린다. 금값이 오를수록 불법 채굴은 늘고, 전력 수요가 늘수록 댐은 더 지어진다. 규제는 항상 사후에 뒤따른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이미 넘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계가 어수선하다. 근데 솔직히 이게 지금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가 더 많이 보게 된 것도 있고, 실제로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
필리핀은 300년 넘게 쌓인 구조가 아직 작동 중이고, 이스라엘은 생존의 공포를 공격의 연료로 바꾸는 중이고, 유럽은 그동안 외면해온 청구서를 한꺼번에 받아들고 있고, 이란은 서방이 만들어준 구도 안에서 혁명수비대가 원하는 전쟁을 하고 있다. 강에서는 돌고래가 사라지고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곯아온 것들이 동시에 터지고 있는 시기라는 느낌이 든다.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적어도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알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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